[이슈]전쟁을 움직이는 또 하나의 무기, 에너지_조성백 SC-전략연구소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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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백 초빙교수, SC-전략연구소

우리는 흔히 전쟁을 무기와 병력의 싸움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무기를 작동시키고, 병력이 작전을 수행하며, 전장이 유지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에너지다. 에너지는 전쟁의 숨은 기반이며, 현대 무기체계의 진화를 이끄는 보이지 않는 핵심이다. 에너지가 없다면 첨단 무기는 무용지물이며, 병력의 기동성과 생존성도 크게 떨어진다. 에너지와 무기체계는 이제 단순한 보조와 주체의 관계를 넘어서, 상호 의존적이며 전략적으로 연계된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무기를 작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동력
현대의 무기체계는 전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과거에는 연료만 공급하면 됐던 탱크나 항공기들도 이제는 수많은 전자장비와 센서, 자동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전자전, 사이버전, 무인전투체계의 등장으로 무기체계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과 형태는 매우 다양해졌다. 예를 들어, 감시정찰 드론은 고도에서 장시간 작전을 지속하기 위해 고에너지 배터리를 필요로 하고, 전자전 장비는 순간적으로 고출력 전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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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파를 이용하면 수많은 드론이 몰려와도 단번에 추락시킬 수 있다. ⓒ everythingrf.com

특히 에너지를 무기 그 자체로 활용하는 기술들도 현실화되고 있다. 고출력 레이저 무기나 전자기 펄스(EMP) 무기는 에너지를 저장하고 순간적으로 방출하여 목표물을 파괴한다. 이러한 무기들은 화약 없이 전기를 무기로 바꾸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상징한다. 무기의 ‘화력’이 에너지의 ‘전력’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이차전지, 전투의 지속력을 좌우하다
이차전지(충전식 배터리)는 이제 군사 작전의 핵심이다. 군용 드론, 휴대형 레이더, 통신장비, 병사들의 웨어러블 장비 등은 대부분 이차전지 기반으로 작동한다. 전쟁터에서 충전 가능한 고효율 배터리는 기동성, 은밀성, 생존성을 모두 확보하게 해준다.

최근에는 리튬이온 전지 외에도 전고체전지, 리튬황 전지, 리튬공기 전지 같은 차세대 배터리가 군사 영역에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전고체전지는 폭발 위험이 낮고, 에너지 밀도가 높아 야전에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장시간 작전이 가능하다. 이차전지 기술의 발전은 전기 추진 차량, 무인 체계, 전장 로봇의 실용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미 육군은 ‘전기화 전략(Electric Military Strategy)’을 추진하며, 전술차량에 고용량 배터리를 적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전기차+이차전지 조합은 저소음 작전과 야간 침투 등에서 전통적인 내연기관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향후 배터리 성능은 작전 지속시간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연료전지, 야전의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다
연료전지는 수소, 메탄올 같은 연료를 사용해 화학 반응을 통해 전기를 만드는 장치다. 특히 소음과 열 방출이 적고, 장시간 고출력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군사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동형 발전기로 쓰이거나, 드론이나 차량, 잠수함, 무인 잠수정 등의 추진 동력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수소 연료전지 기반 발전기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시범 도입해, 기존 디젤 발전기보다 효율이 높고 운용이 간편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또한, 한국, 일본 등도 군용 연료전지 기반 드론 및 감시장비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급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은 전장뿐 아니라 국방 전체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난 에너지의 전략적 가치
2022년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와 무기체계의 관계를 실전에서 보여준 사례다. 특히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과, 에너지 자립 시스템의 도입, 드론+배터리 기술의 융합 등은 전쟁의 새로운 양상을 드러냈다.

우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전력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타격했다. 변전소, 발전소, 송전망이 주요 목표가 되었고, 이는 민간뿐 만 아니라 군 작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이에  대응하여 우크라이나는 태양광 패널, 소형 발전기, 이동형 배터리 시스템 등을 도입해 국지적 에너지 자립을 꾀했다. 향후 에너지는 분산에너지가 중요한 전략적 자산임을 증명하는 계기도 되었다.

또한, 양측 모두 저가형 무인기(UAV)를 대규모로 활용했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이차전지 기반으로 작동하며, 작은 크기와 저소음으로 인해 탐지가 어려웠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상업용 드론을 개조해 정찰 및 타격 임무에 투입하면서, 배터리 성능과 충전 인프라가 전장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게다가 양측 모두 드론과 배터리를 활용한 ‘밤마다 원샷원킬 작전’ 또는 ‘침투 작전’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은 작지만 효율적인 에너지 기반 무기체계의 전략적 가치를 실증한 현대전의 대표적인 예로 기록되고 있다.

에너지 안보 = 국방 안보
현대전에서 에너지 공급망은 그 자체로 전략 자산이자 취약점이다. 따라서 군사 전략의 핵심에는 반드시 에너지 인프라 방어와 자립이 포함되어야 한다. 전기 기반 무기체계가 늘어날수록 사이버 공격, 정전, 연료 차단은 전투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수단이 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에너지 방어(Energy Defense)라는 개념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특히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재생에너지 기반 캠프, 이동식 연료전지 시스템 등은 에너지 위기에 대비한 군사적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전쟁은 이제 총알보다도 전력의 흐름이 더 중요해진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마무리하며: 미래 전장의 에너지를 준비하라
에너지는 단순한 동력원이 아니라 , 전쟁의 양상을 결정짓는 전략 자원이다. 이차전지와 연료전지를 비롯한 에너지원은 전장의 ‘심장’이 되고 있으며, 전력의 자립 여부는 곧 전투력의 지속성을 의미한다. 미래의 전쟁은 누가 더 강한 무기를 보유하느냐 보다, 누가 더 훌륭한  에너지원을 가지고 있느냐가 승패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에너지를 이해할수록 전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무기는 이제 총과 미사일이 아니라, 충전되고 움직이며, 발각되지 않는 에너지 기반 무기들이 될 것이다. 에너지 기술의 미래는 곧 안보의 미래다. 그리고 그 미래는 우리 세대가 이끌어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